숭의를 위한 열정

숭의를 위한 열정

121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오늘의 숨의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끊임없는 기도,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어우러져 명문학교로서의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나님 뜻에 따라 세워진 숨의는 설립부터 재건, 또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대한민국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발전해왔다. 숭의가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발전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신 분들이 계시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숭의교육과 발전에 주춧돌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을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대표적인 분들을 통해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그분들의 의지와 바램들이 이루어져가는 미래를 다시 한 번 꿈꾸어본다.

초대 설립자 마포삼열 박사 이미지

초대 설립자 마포삼열 박사

마포삼열 목사는 미국인임에도 죽는 순간까지 한국을 사랑했고, 그리워했다. 한국선교사로 임명받은 그는 1890년 1월 인천 제물포를 거쳐 서울땅을 밟았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1893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남북도, 황대호 일대를 순회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인생의 모든 사역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매일같이 한국에 돌아갈 날만을 고대했다는 마포삼열목사는 1939년 10월 24일 캘리포니아 몬로비아에서 별세하셨다.


재건 설립자 박현숙

청해(靑海) 박현숙 선생은 평양 숭의여학교 6회 졸업생이며, 숭의 재건의 산파역(産婆役)을 맡아 1953년 숭의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을 당시 설립자겸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재건 초기부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재건의 숙원을 이룩하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큰일들을 수행하면서 폐교한 모교 숭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재건의 어머니이다.

재건 설립자 박현숙 선생 이미지



초대 설립자 마포삼열 박사 이미지

교장 이신덕

"재건 서울 숭의" 하면 생각나는 인물 중 하나이다.

1924년 4월 1일 숭의여학교로 진학해서 본과 5년을 마치고 1931년 3월 보육과를 졸업할 때 까지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숭의의딸로 자라났다. 

1953년 5월 숭의여자중.고등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자 이신덕 동문은 제 7대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보육전문학교 교장, 초등학교 교장 등도 함께 겸임하였으며, 이후 각 학교의 독립적인 운영을 이끌어 거대한 숭의 캠퍼스를 만든 진정한 숭의인 이었다.

이신덕 동문은 참으로 바람직한 교육자요 숭의 재건의 밀알이며, 많은 열매를 맺은 주의 종이다.



한경직 목사

한국 교회와 세계 기독교의 큰 별이셨던 한경직 목사는 1902년 12월 29일 평안남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마포삼열 목사가 설립한 진광소학교에서 기독교와 신진 지식을 배웠으며 오산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대학에 수학하였다.한경직 목사는 1968~1975년 숭의학원의 설립자인 마포삼열 목사 기념 사업회를 추진하여 이사장을 역임했고, 1958년부터 1999년까지의 숭의학원 이사직을 맡으겨 각종 기념식 및 행사에서 기도를 해주셨다.숭의의 재건 후 박현숙 선생과 이신덕 선생을 도와 숭의의 설립이념 계승과 학교발전을 위하여 조언자 역할을 하셨던 한경직 목사는 숭의인이 기억해야 할 은인이다.

재건 설립자 박현숙 선생 이미지





초대 설립자 마포삼열 박사 이미지

백성학 회장(전 숭의학원 이사장)

백성학 회장은 1999년 4월 1일부터 2001년 4월까지 2년간 숭의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숭의학원 이사로 재직하며 15년간 숭의학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백성학 회장은 이사장 취임 당시 재정난에 허덕이던 숭의학원을 2년여 만에 부채없는 재정자립도가 우수한 학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또한 남산캠퍼스에 인접한 외교구락부 부지를 매입하여 대학캠퍼스를 확장하고 대방동에 중.고등학교 교육부지를 확보하는 등 교육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

숭의학원에 대한 백성학 회장의 깊은 애정과 노력은 숭의학원의 지난 역사와 더불어 미래 발전의 반석이 되었다.